미주한인재단 하와이가 지난 10개월간 진행해온 오아후 일대 독립운동사적지 안내 표지판 설치의 여정을 저희 KBFD TV가 함께했는데요. 한인이민 120주년을 기념해 하와이에 일대에 세워진 독립운동사적지 안내 표지판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이 대거 거주했던 하와이에서는 각 농장 으로 흩어져 있던 24개의 농장지회를 1907년 하나로 조직해 하와이 첫 항일 민족단체인 ‘합성협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1908년 장인환, 전명운이 통감부의 외교 고문인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하와이 동포들의 항일 애국 열기는 고조되었고, 이듬해인 1909년 합성협회가 대한인 국민회로 재조직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또한 1921년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상해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조직한 ‘동지회’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며 하와이 한인들의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1903년 해외 최초 한인교회로 지난 120년간 하와이 한인들과 함께해온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와히아와 올리브연합감리교회, 이승만 박사가 세운 릴리하 한인기독교회 등 종교계는 하와이 한인들의 국권회복 운동에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미주에서 독립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곳인 하와이 일대에 독립운동사적지 60여 곳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주한인재단 하와이는 국가보훈부의 지원으로 ▲지난 1월 13일 해외 최초 한인교회이면서 20여 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시작으로 ▲1920년대 한인타운 이라 불리었던 와히아와 지역 “아랫동네” 교회로 불리면서 애국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올리브연합감리교회, ▲1918년 이승만 박사가 한인들의 독립된 교회를 설립하고, 1938년 지금의 광화문 문루를 가미한 교회를 건축해 대한인들의 자긍심을 고취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릴리하 한인기독교회와 ▲1919년 빅아일랜드 한인들을 위해 설립한 힐로 한인기독교회, ▲또한 1926년 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에 960에이커의 토지를 매입해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세계 최초로 설립된 회사가 있던 동지촌 숯가마 옛 터, ▲1905년 성공회 교인들이 첫 예배를 시작한 성누가 성공회교회, ▲이승만 박사의 지도로 1914년 조직되어 미국 주류사회에 대한인들의 자주독립을 알리는 창구역할을 했던 호놀룰루 한인 YMCA, ▲1903년 1월13일 첫 한인 이민단이 도착해 일하던 와이알루아 농장의 초기 이민자들이 안장된 푸우이키 묘지, ▲그리고 합성협회오아후 묘지까지 총 10곳과 미주한인재단이 그동안 설치해온 ▲한인기숙학교 옛 터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터 ▲해외 최초 3.1운동 만세삼창이 거행되었던 한인기독학원 알리이올라니 교정 옛 터 ▲광복 후 토지를 매각해 인하공대의 설립자금으로 활용되었던 한인기독학원 갈리히 교정 옛 터 4곳 까지 총 14곳의 독립운동사적지에 안내 표지판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미주한인재단 하와이는 도시가 현대화되면서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이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공간을 기억하기 위해 하와이 독립운동사적지 표지판을 설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이러한 유산을 미래세대에 지속해서 남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안내서로 만들어 하와이 한인회와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등 홈페이지에 게재해 하와이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관광지로서의 하와이가 아닌 독립의 하와이, 질곡이 역사가 현재가 공존하는 하와이를 알려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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